다시 이순신

한국고전번역원

내일을여는신문 | 입력 : 2019/08/21 [10:11]

                                          다시 이순신

   

 

 

장군의 사당 아래 대숲 사이에서
어인 일로 서생은 통곡하고 돌아오나
바다 산에 맹세하던 곳 그 어디메뇨
동쪽 고래 날로 하늘에 닿을 듯 물을 뿜네

 

將軍祠下竹林間장군사하죽림간
底事書生痛哭還저사서생통곡환
誓海盟山何處是서해맹산하처시
東鯨日噴接天瀾동경일분접천란

 

- 김창숙(金昌淑, 1879~1962), 『심산유고(心山遺稿))』 권1 「10월 10일 밤 꿈에 김진우 군과 함께 바닷가 어느 대숲에 이르러 이충무공의 사당에 배알하고 술을 부어 통곡하다 시 한 편을 읊었는데, 꿈에서 깨어나 기록하다. [十月十日夜夢與金君振宇 相携至海上一處竹林中 謁李忠武祠 酌酒痛哭 詠一絶詩 覺而記之]」

   
해설

   민족이라는 상상적인 공동체는 영웅을 필요로 하기 마련이다. 영웅은 시대의 열망과 목적에 따라 재현되면서 민족의 집단적 기억으로 되살아난다. 우리 민족에게 이순신만큼 강력하고도 깊은 울림을 주는 영웅이 있을까. 이순신은 지금 이 순간에도 민족을 구원한 무결점의 성웅(聖雄)에서부터 고뇌와 갈등에 번민하는 실존(實存)의 인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소환되고 있다.

 

   특히 구한말에서 일제 강점기에 이르는 기간에 이순신은 당연히 민족이 처한 난관의 극복과 위안, 승리에 대한 열망의 상징이었다. 독립을 위해 맹렬하게 활동하다가 검거되어 고문후유증으로 장애를 입고 은둔하던 당시(1936년) 심산(心山) 김창숙에게 그것은 더욱 절실하였으리라. 꿈속에서 충무공의 사당을 배알하고 통곡하고 시를 읊었다는 것도 그러한 자신의 정황과 심사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함께한 김진우(1883~1950)는 구한말 의병으로, 상해 임시정부 의원으로 활동하였던 인물인데, 당대 묵죽(墨竹)의 최고봉으로도 명성이 높았다. ‘통곡하고 돌아오는 서생’은 심산 자신 또는 일행을 가리키며, 통곡하는 이유는 다음 두 구에서 알 수 있다.‘서해맹산(誓海盟山)’은 이순신의 시 「진중음(陣中吟)」의“바다에 서약하니 어룡이 꿈틀대고, 산에 맹세하니 초목이 알아주네. [誓海漁龍動 盟山草木知]”구절을 인용한 것이다. 동쪽 고래가 날마다 하늘까지 물을 뿜는다는 것은 한창 왕성한 일제의 세력을 뜻한다. 곧 암울한 당대의 현실을 타개할 이순신과 같은 영웅이 없음을 한탄하고 강성한 일제에 대한 분노를 표출한 것이다. 이러한 비분강개의 기저에 있는 것은 국난 극복에 대한 강건한 의지와 굳은 열망이리라.

 

   역사적으로 위기 때마다 이순신을 불렀다. 정치권에서 이순신을 부르고 이순신의 리더십을 부르짖을 때면 반대편에서는 단순한 진영논리로 비판의 화살을 보낸다. 그러나 이순신의 리더십을 제대로 실천하는 것을 누구라고 바라지 않으랴. ‘동경일분(東鯨日噴)’을 다시 획책하는 작금에 우리는 다시 이순신을 부른다. 그러나 그 부름은 비장하기보다는 오히려 유쾌하고 암울하기보다는 오히려 희망적이다.

 

글쓴이정동화
한국고전번역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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