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는 목만중이 58세가 되던 1784년에 봉은사를 방문하여 지은 시이다.
저자는 어릴 적에 부친 목조우(睦祖禹 1693~1756)에게 교육받으며 부친이 젊은 시절 봉은사에서 공부했던 이야기를 들었다. 그 기억은 수십 년의 시간이 지났어도 퇴색되지 않고 오히려 저자를 그 공간으로 이끈다.
사찰 경내를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28년 전에 세상을 떠난 선친의 젊은 시절을 상상해 본다.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 당시 이곳의 선친을, 저자가 기억하고 있는 가장 젊은 시절 선친의 모습으로 치환해 보지만 당년 선친의 모습은 아니다. 당년 선친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이가 혹 있을까 싶어 찾아보지만 칠십여 년 전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선친의 흔적을 찾아다니던 저자에게 72년 전 선친이 남긴 필적이 눈에 들어온다.
단순히 성명과 기록 시기에 대한 내용에 불과하지만, 꿈에 그리던 이름과 익숙한 필적에 반가운 마음이 왈칵 쏟아진다. 그 완연한 묵적을 보니 이제는 희미해져버린 선친의 모습이 불현듯 선명하게 다가오는 듯한 착각마저 인다. 임진년 중추 어느 날의 환한 달빛과 그 아래에서 낭랑하게 글을 읽는 서생의 모습이 보이는 것만 같다. 당시 이곳의 선친뿐만 아니라, 선친이 이 세상에 존재했었다는 사실 자체를 증명해주는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인다. 차마 발길을 뗄 수 없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사람들은 소중한 존재를 잃게 되면 처음에는 그와 공유했던 일상적인 공간 속에서 그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며 슬퍼하기에 여념이 없다. 그러다가 점점 시간이 흘러 그 공간에 다른 기억들이 차면 어느덧 그곳에서의 그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려 해도 쉽사리 떠올려지지 않는다. 그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가 전부였던 공간에 이제는 그가 없다. 소중했던 사람이기에 그가 떠오르는 것도 고통이고 그가 떠오르지 않는 것도 고통이다.
이제는 희미한 그의 모습을 떠올리다 어릴 적 어렴풋한 기억의 한 자락을 뒤적여 봉은사에 간 것도 그런 이유였으리라. 봉은사에는 온통 선친만 존재했고 선친의 묵적이 있기에 반가웠다. 허나 눈 앞에 있는 것은 결국 한 그루 고목과 저자의 마음을 알아주는 듯 부는 처연한 바람 한 줄기뿐이었다.
귀뚜라미가 심회를 돕는 가을밤에 옛 사진들을 보다가 문득 감회에 젖어 몇 줄 끄적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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