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아, 남산 위의 저 푸르른 솔아

한국고전번역원

조여일 | 입력 : 2020/08/12 [12:07]

                                     솔아, 남산 위의 저 푸르른 솔아

   

 

멀리 푸르른 남산 솔숲 눈에 들어오는데
우배 잠두 봉우리에 짙은 그늘 덮였어라
어찌하면 저 푸른 기운 청정하게 키우며
천년토록 베여지지 않게 할 수 있을까

 

蒼蒼入目遠松林 창창입목원송림
牛背蠶頭萬蓋陰 우배잠두만개음
安得長靑滋覇氣 안득장청자패기
千年不受斧斤侵 천년불수부근침

 

- 김창흡 (金昌翕, 1653~1722), 『삼연집(三淵集)』 권5 「반계십육경(盤溪十六景)」중 「목멱송림(木覓松林)」

   
해설

   이 시는 삼연 김창흡이 멀리 서울 남산의 봉우리들을 바라보면서 아름답고 푸르른 솔숲이 훼손되는 일 없이 오래오래 지켜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염원을 담아 쓴 시이다. 시의 내용과 메시지는 간략한 듯 보이지만, 그 행간에는 소나무에 대한 애정뿐 아니라 소나무와 함께해 온 우리네 풍속과 정신과 문화와 역사까지 지키려는 강한 의지가 담겨 있는 듯하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소나무로 만든 집에서 태어나 솔가지 끼운 금줄의 축복 속에서 인생을 시작했다. 솔가리로 군불을 때고 밥을 해먹으며 송이에, 송기떡에, 송엽주에, 솔잎차를 즐기며 살다가, 죽으면 소나무 관에 들어가서 솔숲에 묻히는 삶이었다. 어머니들은 언제나 집 뒤의 청정한 솔바람 소리를 들으며 자식을 위해 기도했고, 아버지들은 소나무의 사철 푸르름과 바위를 뚫는 생명력과 높고 큰 기상을 배우라고 자식들에게 가르쳤다.

 

 ▶ 사진 제공 : 추교석

 

    그 옛날 경복궁과 창덕궁을 건축할 때에도, 세곡 운반에 필요한 조운선이나 병선(兵船)을 제작할 때에도, 소나무는 ‘으뜸 나무’라는 그 이름에 걸맞게 언제나 제일가는 재목이었다. 따지고 보면 충무공의 거북선과 왜군 안택선(安宅船)의 싸움도 결국은 소나무와 삼나무의 전쟁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전쟁만이 아니라 우리 소나무는 문화 사절의 역할도 다하였다. 교토 고류사에 소장된 일본 국보 미륵보살상은 신라가 제작하여 보낸 목조 불상인데, 울진의 소광리 소나무로 제작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뿐이랴, 우리 선조들이 초근목피(草根木皮)로 보릿고개를 넘길 때, 그때의 초근은 칡뿌리요 목피는 솔의 속껍질인 백피(白皮)였으니, 이래저래 소나무는 서민들에게 있어서도 참으로 귀하고 고마운 존재였다 하겠다.

 

 

 

 

 

 

 

 

▶ 정선(), <장안연우(長安烟雨)>, 간송미술문화재단 제공

 

 

   이렇듯 소나무가 우리의 일상과 문화 전반에 굳건히 뿌리를 내리고 우리와 고락을 함께 나누면서 우리의 유전자에 강하게 각인되어 있어서일까? 산림청과 한국갤럽이 조사한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는 단연 소나무다. 특히 서울 남산의 소나무는 예나 지금이나 우리 ‘정체성’의 보루이자 ‘민족혼’의 상징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런데 삼연 김창흡이 그토록 지키기를 바랐던 ‘남산 위의 저 소나무’는 다 어디로 간 것일까? 겸재 정선의 <장안연우(長安煙雨)>와 <한양도성 전도>에도 또렷이 나오는 남산 꼭대기의 그 낙락장송 말이다. 1411년 태종이 3천 명의 인력을 동원하여 20일 동안 식재한 이후 울창한 송림이 조성되었고 그로 인해 수도의 안산(案山)으로서 고고한 위용을 자랑하던 저 남산의 소나무가 대대적으로 벌목된 것은 바로 일제에 의해서다.

 

   일제는 남산 일대에 통감부, 조선총독부, 헌병대사령부, 조선사편수회 등을 지으면서 소나무를 벌채하였고, 특히 조선신궁을 지으면서는 13만 평에 달하는 남산 중턱과 정상부 일대의 수목을 베어냈다. 이로써 남산은 제 모습을 잃었고 생태계는 파괴되었다. 해방 이후에도, 복원은커녕 각종 건물과 시설들을 줄줄이 허가하는 바람에 훼손은 더욱 가속화되었다. ‘남산의 제모습찾기 운동’이 시작된 건 광복 50년이 다 되어가던 1994년부터였으니, 만시지탄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지금은 그나마 조금 남은 남쪽사면 소나무 군락지를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고, 팔도의 소나무를 남산에 심어 숲을 조성하는 행사도 벌이고 있지만, 이런저런 난관들이 많아 아직 제 모습을 찾아가기에는 발길이 더딘 모양새다. 더구나 지구온난화, 대기오염, 토양 산성화 등으로 생장 환경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데다, 소나무 재선충병으로 인해 전국적으로 해마다 수십만 그루의 소나무가 베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 남산의 소나무, 소나무 하단의 흰표지들은 소나무재선충병 예방접종 표지임

 

   일본의 경우 1905년에 처음 이 병이 발병한 뒤 67년이 지난 1972년에야 그것이 재선충병임을 알게 되었는데, 그 사이 일본의 솔숲은 거의 전멸하고 말았다. 중국도 어느새 우리 산림 면적보다 넓은 700만 헥타르의 솔숲을 잃었고, 마지막 보루인 황산(黃山)의 솔숲을 지키기 위해, 황산 둘레로 폭 4km, 길이 100km 이내에 있는 소나무를 전부 베어내는 등 그야말로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한다. 이는 먼 나라 일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금방 현실화 될 수 있는 일이기에 시름과 두려움이 깊어지는 게 사실이다.


 

   그래도 우리는 아직 충분히 대처가 가능한 상황이다. 이웃나라의 실패를 거울삼아 적극적인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2005년에 제정된 <소나무재선충병특별법>을 더 보완 개정하여 소나무의 무단 이동이나 감염목 반출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고, 매개충인 솔수염하늘소나 북방수염하늘소에 대한 방제와 천적 연구에 예산을 더 늘리는 한편, 적극적인 홍보와 선제적 예방을 통해 이 위기를 극복해 나가야 한다. 생각하기도 싫지만, 만약 우리의 대처가 늦어 일본처럼 방제를 포기하는 지경에 이른다면, 남산 위의 소나무는 그저 애국가의 가사로만 남아 있게 될 것이며, 결국 후손들에게 선조들의 부끄러운 과거를 고백할 수밖에 없는 날이 오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광복 75주년을 맞아 남산을 바라보자니 삼연의 삼백년 전 그 간절했던 염원이 다시 가슴에 여울져오는 8월 비오는 날의 늦은 오후이다.

 

글쓴이이기찬
한국고전번역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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