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과 보전의 균형

한국고전번역원

조여일 | 입력 : 2021/06/02 [11:48]

                                                개발과 보전의 균형

   
잡는 데는 적절한 도구가 있고, 먹는 데는 적당한 시기가 있다.

 

 

取之有其具 食之有其時
취지유기구 식지유기시


- 이색(李穡, 1328〜1396), 『목은집(牧隱集)』2권 「어은기(漁隱記)」

   
해설

   이색의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영숙(潁叔), 호는 목은(牧隱)이다. 가정(稼亭) 이곡(李穀)의 아들로, 1653년 예부시(禮部試)에 장원하였다. 그해 가을 진봉사(進奉使) 서장관(書狀官) 자격으로 원(元)에 갔다가 이듬해 원의 과거에도 합격하였다. 한산부원군(韓山府院君)에 봉해졌으며 조선 초기 많은 관리들이 그의 문하에서 배출되었다.

 

   「어은기」는 염흥방(廉興邦)이 천녕(川寧)에 거주할 때 어은(漁隱)이라 자호(自號)하고 이색에게 요청하여 받은 글이다. 글의 서두에는 상고시대의 두 가지 이야기가 나온다.

 

   하나. 상고시대 성인들이 사물의 형상을 관찰하여 도구를 만들었는데 사냥용 그물[網]과 고기잡이용 그물[罟]도 그중 하나였다. 치수(治水) 사업이 미비했던 요순(堯舜)시대에 하우씨(夏禹氏)는 9년 동안이나 중국 곳곳을 다니며 홍수 해결에 분주하였다. 당시 짐승들의 피해도 혹독했으므로 그것들을 잡아 피해를 줄이는 한편 식량으로 사용하기 위해 그물이 발달하게 되었다.

 

   둘. 사람들의 욕심은 끝이 없어 남획의 폐단이 발생하였다. 맹자(孟子)는 “촘촘한 그물을 웅덩이와 연못에 넣지 않으면 물고기와 자라를 다 먹지 못할 것이다.[數罟不入洿池, 魚鼈不可勝食也.]”라고 하였다. 남획을 막아 멸종을 방지해야 함을 말한 것인데, 이는 한 자가 되지 않는 물고기는 시장에서 팔 수 없고 먹어서도 안 되는 법으로 구체화되었다.

 

   첫 번째는 잡는 도구[具], 두 번째는 먹는 때[時]에 관한 이야기다. 상고시대의 이야기지만 오늘날 우리의 현실과 닮았다. 식량 확보를 위한 기술과 도구 개발을 지속한 결과 인류의 식량 사정은 개선되었다. 그러나 60억 세계 인구 중 9%가 아직도 기아에 허덕인다. 남획과 멸종 방지를 위해 도구를 제한하고 금렵(禁獵)ㆍ금어기(禁漁期)를 두는 등 법과 제도를 마련하였지만 위반 사례는 끊이지 않고, 멸종하는 종(種)도 늘어간다. 결국 개발과 보전의 균형 찾기는 21세기의 오늘도 숙제인 셈이다.

 

   언제부턴가 “지구야, 미안해.”라는 말이 유행하였다. 쓰레기가 섬을 이루고 동물의 뱃속에서 플라스틱 쓰레기가 나온다. 깡통에 머리가 낀 동물이나 몸에 감긴 그물에 괴로워하는 물고기 모습을 보며 던진 말이다. 편의를 위해 개발한 것들이 자연과 생태계를 파괴하고, 결국 우리의 먹거리와 삶을 위협한다. 지구한테 미안할 일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발등 찍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구에게 미안하기 전에 우리의 안전하고 행복한 삶을 위해 개발과 보전이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지혜를 모으고 더욱 노력해야 한다. “지속 가능한 개발”이 구호에 그치지 않기를 희망한다.

글쓴이정만호
충남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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