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을 돌아보라

조여일 | 입력 : 2017/02/15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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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명구
2017년 2월 15일 (수)
  2016 '한국고전종합DB' 활용 공모전 고전명구 부문 당선작  
   
익숙함을 돌아보라
   
달관한 사람에게는 괴이한 것이 없으나,
평범한 사람에게는 이상한 것이 많다.

 

 

達士無所恠, 俗人多所疑.
달사무소괴, 속인다소의.

 


- 박지원(朴趾源, 1737~1805), 『연암집(燕巖集)』 권7 별집 「능양시집서(菱洋詩集序)」

   
해설
   이 글은 연암이 박종선(호 능양(菱洋), 박지원의 조카)의 시집에 서문으로 써 준 글이다. 연암이 그를 ‘동방의 대가’라 칭찬할 만큼 시에 능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격식에 맞지 않는 그의 시를 이상하다며 폄하하고 비난했던 것 같다. 이에 연암은 그의 시 짓기를 격려하며 위와 같은 말로 서문을 시작한다. 새로운 것은 익숙하지 않은 것이고 익숙하지 않은 것은 이상하게 보일 뿐이니 비난에 굴하지 말고 더욱 노력하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왜 평범한 사람에게는 이상한 것이 달관한 사람에게는 별문제가 되지 않는 걸까?

 

   연암의 말을 더 들어보자.
아! 저 까마귀를 보라. 그 깃털보다 더 검은 것이 없건만, 홀연 유금빛이 번지기도 하고 다시 석록빛이 반짝이기도 하며, 해가 비추면 자줏빛이 튀어 올라 눈이 어른거리다가 비췻빛으로 바뀐다. 그렇다면 내가 그 새를 ‘푸른 까마귀’라 불러도 될 것이고, ‘붉은 까마귀’라 불러도 될 것이다. 그 새에게는 본래 일정한 빛깔이 없거늘, 내가 눈으로 먼저 그 빛깔을 정한 것이다. 어찌 단지 눈으로만 정했으리오. 보지 않고서 먼저 그 마음으로 정한 것이다.[噫。瞻彼烏矣。莫黑其羽。忽暈乳金。復耀石綠。日映之而騰紫。目閃閃而轉翠。然則吾雖謂之蒼烏可也。復謂之赤烏。亦可也。彼旣本無定色。而我乃以目先定。奚特定於其目不覩。而先定於其心。]

 

   우리는 눈에 보이는 대로 말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이미 정해진 어떤 틀에 의해 판단한다. 우리는 구별할 수 없는 초록색을 여러 가지 다른 초록색으로 구별하는 밀림의 부족도 있다. 살아가는 환경, 문화, 시대에 따라 우리 눈에 보이는 것들도 있고, 보이지 않는 것들도 있다. 말하자면, 우리는 이미 도수가 정해진 익숙한 안경을 쓰고 있는 셈이다. 그러므로 이미 맞춰 놓은 시선에서 벗어나는 사물을 보면 이상하게 보일 것이다. 검은 까마귀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까마귀는 본래 일정한 빛깔이 없다”는 말조차 이상하게 들린다. 그에게 낯선 것이란 새로운 것, 이상한 것, 괴이한 것이다.

 

   반면에 달관한 사람[達士]은 자기에게 씌워진 익숙한 안경을 고집하지 않는다. 그에게 새로운 것이 이상한 것이 되지 않는 이유는 자기 시선에 대상을 맞추는 게 아니라 대상을 향해 자기 안경의 도수를 조절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사물의 다른 면모를 보지 못한 자신의 고정된 시선이 문제이지, 대상이 본래 이상한 것은 없음을 알게 된다. 그러니 달관한 사람에게는 이상할 것이 없고, 그로 인해 차별하거나 배척할 것도 없게 된다. 하지만 익숙한 시선, 편안한 상식을 버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익숙함과 편안함을 버린다는 것은 불안함으로 뛰어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시인이란 이런 불안을 갈고 닦아 남들도 다 아는 언어로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는 사람이다.

 

   익숙한 것조차 낯설게 볼 수 있는 시인의 능력, 이것이 타인과 소통하는 첫걸음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 기준으로 판단하지 말고 저 사람이 처한 상황과 환경으로 뛰어들어 헤아려보기, 진정 역지사지(易地思之)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가 딛고 있는 단단한 땅부터 벗어나야겠다. 그곳에 이상한 사람들이 아니라, 새로운 사람들이 기다리는 문이 있을 것이다.
글쓴이신부순
구리여자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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