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비(哭婢) - 조여일

내일을여는신문 | 입력 : 2023/12/16 [22:19]

                                             

                                               곡비(哭婢)

 

                                                 조여일

 

 

엄니는 등에 울음통을 짊어졌다. 보리쌀 한 되에 울고 동전 몇 닢에도 울었다. 엄니가 우는 날은 배가 불렀다. 그래도 나는 '저 놈의 울음 통!' 하면서 잠든 엄니의 등을 발로 차고 도망갔다. 외할머니가 감나무에서 떨어져 죽고 아버지가 술에 취해 물에 빠져 죽었다. 엄니는 울지 않았다. 사람들은 엄니를 독한 꼽추라고 했다.

아침부터 비는 간간이 흩뿌린다. 일기예보에는 없던 비다. 묵은 솜 같은 구름은 서로 엉겨있다. 마음이 편편찮다. 일을 끝내놓고 왔더라면 이렇듯 불편하지는 않을 터다. 그가 백중굿에 쓸 깃발을 만들고 그 뜻을 알리는 문구를 먹물로 쓰라고 했다. 그러나 흰색 천으로 깃발만 간신히 만들고 문구는 넣지 못했다. 굿판의 의도를 한눈에 알 수 있게 쓰는 일이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틀을 신중하게 생각했지만 마땅한 문구가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흰색 무명천을 길게 마름하고 시침질해서 대나무에 달아놓기만 했다.
자동차 바퀴가 미끄러질 것만 같아 두 손으로 운전대를 꽉 잡는다. 어깨가 뻐근하고 눈도 아프다. 등을 움죽거려 허리를 곧추세운다. 앞차와의 안전거리를 위해 속도를 늦춘다. 철책선 너머에 깎아지른 산을 덧씌운 그물망이 보인다. 그물망 밑으로 불규칙한 바위와 간신히 살아남은 것 같은 풀과 아주 작은 묘목들이 눈에 띈다. 장애물로 인해 곧게 자라지 못한 묘목은 선이 가늘고 볼품없이 휘었다.


"늦어도 모레 아침까진 와야 한다.“


어제 아침, 스님의 전화를 받았다. 어머니의 넋을 보듬어 줘야 되지 않겠냐는 말씀을 끝으로 전화는 끊겼다. 착잡했다. 생전의 어머니에게 살가운 정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애틋하게 그립지도 않았다. 이제 와서 스님의 뜻에 따라 어머니 넋을 보듬기엔 서먹하고 낯 뜨거운 일이다. 그러나 스님 말씀을 나 몰라라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불가의 음력 715일은 우란분절이라 하여 1년 중 가장 좋은 날이다. 지옥문이 열리는 날이라 조상들을 위하여 간절히 기원하고 영가(靈駕)를 천도한다. 이날은 스님들의 하안거가 끝나는 날이고 백중일이기도 하다.
스님은 백중날 지옥의 문이 열리매 내 정성이 그곳에 닿아 어머니 넋을 보듬어 천도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일까. 어머니에 대한 그런 정성이 내게 있다고 믿는 것일까. 아니면 이미 고인이 됐지만 이쯤에서 낙타처럼 짐 진 어머니의 실체에 대한 혐오와 어머니의 존재를 강하게 부정했던 어린 날의 면구스러움을 사죄하기를 바라는 것일까. 스님은 어머니의 영가에게 입힐 한지로 된 해탈복과 이승과 저승 간의 고해 바다를 건널 때 타고 갈 배를 내가 만들길 바랐다. 사정이 여의치 않아 천도제를 지낼 수 없다고 하자 스님은 그것만 만들어 놓으면 백중날 제를 지내고 영가를 태워서 천도하는 일은 당신이 알아서 하겠노라며 완고한 자세를 보였다. 1전방에 휴게소가 있다.

그림자처럼 키가 훌쩍한 그는 겨드랑이가 보이도록 왼팔을 크게 벌려 장구의 궁편을 채로 벌처럼 톡 쏠 때 학 같았다. 그러기를 여러 번 반복하다 보면 분무기로 뿌려 놓은 것처럼 안개 같은 푸른 땀이 이마를 덮곤 했다. 대가 없는 강습을 열정적으로 하는 그가 참 신기했다. 풍물패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직업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풍물은 그저 일상생활의 피로나 스트레스를 덜어내는 수단일 뿐이었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열심히 강습을 하는 건 그의 직업이 쇠잡이인 탓도 있겠지만 아마도 풍물에 대한 열정이 그대로 나타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말처럼 하고자 하는 일에 미쳐야 산다면 나는 설 미쳤다.
글을 쓰고자 하는 열망 때문에 모든 것이 무모하게만 생각됐을 그때, 구청 담벼락에 붙어 있는 풍물 굿의 포스터를 보았다. 상쇠가 채상을 돌리면서 꽹과리를 치는 아주 역동적인 모습이었다. '백중굿'이라고 인쇄된 포스터를 그 자리에 붙박고 한참 쳐다보았다. 그가 속해있는 풍물패와 그의 이름이 선명히 박혀 있었다. 그가 머리에 쓰고 있는 채상과 이름 끝 자를 번갈아 보면서 어쩌면 그는 풍물을 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름 끝 자가 빙빙 돌고 있는 채상과 모양이 같았기 때문이었다. 깃털로 장식된 채상의 부들은 움직임으로 제 모습을 표현하는 것처럼 그의 이름 끝 자도 출렁이며 움직이는 모양이었다. 그는 움직임으로 자신의 무엇을 표현하고 싶었을까. 이름과 채상의 묘한 조화! 그는 한번이라도 그런 생각을 해 봤을까.
며칠 후 나는 그가 있는 풍물패 '공간'으로 갔다. 반지하의 계단 밑에서 잠시 망설이다 가슴을 내밀어 숨을 쉬고 두어 번 문을 두드렸다. 안에서 확실치 않은 남자의 저음을 듣곤 조심스레 문을 당겼는데 삐드득하는 예상치 못한 소리에 얼마나 놀랐던지. 포스터의 역동적인 모습과는 달리 실제의 그는 고요하고 정제된 느낌이었다. 그게 벌써 일 년 전 일이다.

흩뿌리던 빗줄기가 어느새 굵다. 앞차와의 간격이 좁혀진다. 부분적인 정체 구간이다. 차창이 뿌옇게 흐려온다. 티슈로 닦아내도 그때뿐, 다시 시야를 방해한다. 차창을 조금 연다. 비스듬히 내리는 비가 잘게 튀어 얼굴을 적신다. 간헐적으로 움직이는 윈도 와이퍼 사이로 앞차가 보인다. 뒷좌석 등받이 위쪽에 장식용 강아지 한 쌍이 놓여있다. 점박이다. 강아지의 목은 쉼 없이 달랑거린다. 상체를 앞으로 당겨 강아지를 맥없이 바라본다.
어머니의 키는 내 가슴께 닿았다. 갓 돌이 지난 어머니를 여덟 살 난 외삼촌이 등에 업고 감나무를 올라가는데 느슨해진 포대기 밑으로 어머니가 쑥 빠졌다. 떨어지면서 다친 허리가 그대로 굳어 곱사등이가 되었다. 하체에 비해 넓은 어깨는 근육이 잘 늘어나지 않아서 목을 움직일 때마다 따라 움직였다. 그래서 옆이나 뒤를 흘기듯 보았다.


"북이 ''을 잡아먹기 때문에 ''가 중요한 거야.“


열채를 잡은 내 오른손에 자꾸만 힘이 들어가자 그는 힘을 빼라며 <>소리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손과 손목과 팔과 그리고 어깨에 힘을 빼고 쳐야만 옳게 소리가 나온다고, 그러려면 많은 연습과 시간을 필요로 한다며 입귀에 버캐가 끼도록 설명할 때 그의 눈은 반짝 빛이 나면서 물이 차오른 미루나무 같았다. 그가 내는 예리하고 선명한 소리들은 30평 쯤 되는 지하공간을 에워싼 올록볼록한 흡음재에 부딪혀 사방을 맴돌다 천장과 벽에 찰싹 달라붙었다. 하다못해 채상이나 고깔에도 그 소리는 배었다. 이중으로 되어 있는 '공간'의 문을 열면 언제나 그를 닮은 소리들이 나를 통과하곤 했다.

어머니는 종종 나를 스님이 계신 절로 보냈다. 절 아래는 동네가 여럿 있었고 생명이 태어나기도 했지만 죽기도 했다. 살아 있는 것들은 죽음을 품었으리라. 초상은 봄철에 많이 났다. 겨우내 혼신을 소진하고 명줄을 놓는 노인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나를 스님께 보냈는데 어머니가 내게 우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던 까닭임을 어림으로 짐작할 수 있었다.


동네 어귀를 벗어나면 큰 둑이 있었다. 둑을 사이에 두고 한쪽은 모두 논이었고 반대쪽은 가뭄을 대비해 물을 가둬놓은 저수지였다. 아이들은 둑 위에서 놀다 지치면 어른들 몰래 저수지에서 멱을 감았고 간혹 물에 빠져 죽었다. 꼭 사람이 죽은 그 자리에서 죽었다. 어른들은 지박령 때문이라고 했다. 죽은 영혼이 자리를 뜨지 않고 있다가 아이들을 꼬여 데려가는 거라고. 아버지도 그랬을까?
여덟 살에 아버지를 여읜 내게 스님은 아버지였다. 어머니에 대한 불평과 악담을 어린 입술로 오물거릴라 치면 스님은 내 손목을 잡고 극락보전 뒤쪽으로 가곤했다. 그곳엔 점재된 수많은 동백나무가 완고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동백은 산골의 봄추위에도 붉은 꽃을 피웠는데 마치 앙살궂은 나를 꾸짖는 것만 같았다. 산길을 따라 위로 조금만 올라가면 빽빽한 나무숲이 있었다. 그 앞에 나를 세우고 검지로 나무들 틈에 위태롭게 서 있는 비쩍 마른 소나무를 가리켰다. 소나무의 허리는 다른 나무에 비해 턱없이 짧고 비틀렸다.


"얘야, 환경이 같다고 해서 나무가 똑같이 자랄 수는 없단다. 저 나무도 땅에 뿌리를 내렸을 때는 다른 나무들과 같았단다. 그러나 웃자란 가지에 가려 바람도 덜 맞고 하늘도 제대로 볼 수가 없어 저렇게 된 거란다. 저게 제 탓이겠느냐. 저 나무를 불쌍히 생각해야 한다.“


스님의 말씀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소나무를 보는 스님의 축축한 눈빛에서 어머니를 가엾게 생각하고 있다는 걸 어린 마음에도 느꼈을 뿐. 그러나 스님의 말씀이나 어머니의 처지를 이해하기엔 내 나이가 턱없이 부족했다. 그저 웃자란 나무들처럼 빨리 커서 지긋지긋한 동네를 벗어나길 간절히 바랐을 뿐이다.

국도로 접어든다. 비는 질기게 내린다. 자동차가 갑자기 절룩이며 흙물이 튄다. 예상치 못한 일이라 놀란다. 도로가 패어 물이 고여 있었던 모양이다. 빗속의 이정표를 본다. 13이란 숫자가 보인다. 그만 자동차를 시내로 돌린다. 꼬박 여섯 시간을 운전한 탓에 몹시 피곤하다. 지금 스님께 간들 어머니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만 들을 것이다. 될 수 있으면 어머니 얘기는 피하고 싶다. 모텔을 찾았으나 얼른 눈에 띄지 않는다. 30여 분을 돌았을까. 다시 제 자리다. 시내가 협소하고 신축한 건물보다는 오래된 건물이 많고 허름하다. 찬찬히 다시 둘러본다. 간신히 하루 여숙 할 곳을 찾는다. 보초병처럼 길게 서 있는 간판의 낡은 빛이 비에 푹 젖은 지푸라기처럼 힘이 없다. 차를 주차 시키고 가방을 챙긴다. 비가 정수리로 떨어진다. 손바닥으로 정수리를 가리며 여관 추녀 밑을 큰 걸음으로 간다. 까맣게 코팅된 여관 유리문에 빨간색으로 오려 붙인 장수장, 공기가 들어갔는지 ㅇ자가 조금 떠 있다. 출입문을 열자 사각의 작은 창이 열린다. 주인 여자의 얼굴이 창에 꽉 찬다. 영정사진 같다. 방을 하나 달라는 말에 여자는 굼뜨게 일어나 문을 열고 나온다. 슬리퍼를 질질 끌면서 여자가 앞장선다. 자연스레 여자의 뒤통수에 눈이 간다. 파마한 머리카락은 심하게 눌려있다. 가을철에 배추를 따내고 남은 밑동 같다. 108호 앞에 여자는 멈춘다. 열쇠를 내게 건네주고 휭하니 가버린다. 그런대로 방은 깨끗하다. 네댓 평 되는 방에 낡은 가구와 TV가 놓여있다. 가방을 문갑 위에 올려놓고 커튼의 귀퉁이를 들어 밖을 내다 볼 때 여자가 다시 온다. 일회용 칫솔과 수건, 생수가 든 작은 페트병을 놓고 간다.

"올라가는 건 떨어지기 위해서야.“


두 달 넘게 오금질을 해도 나아지는 기미가 없자 그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잡아 줄 테니 해봐.“


헤실바실하다 나는 못 이기는 척 일어섰다. 그의 손은 따뜻했다.


"상체에 힘을 빼야 해. 내 상체를 봐.“


그의 상체는 해파리 같았다. 하체만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선반은 오금질이 기본이라고 그가 말했다. 오금질을 잘해야만 가락이 제대로 나온다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가락의 배가 달라져서 장구가락이 제각각이라고.


투욱 투욱 투욱.


무릎을 조금 굽히고 왼발과 오른발의 뒤꿈치를 번갈아 들어 올렸다 떨어뜨렸다. 발이 동그라미를 그리는 것 같았다. 그럴 때마다 몸은 위로 올라갔다가 떨어졌다.


"호흡으로 원을 만들어야 해, 결국은 모든 게 호흡이야.“


오금이 저려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저리다는 말은 할 수가 없었다. 그의 태도가 너무 진지했기 때문이었다.


"올라가는 건 떨어지기 위해서라고 했지? 잘 떨어지기 위해선 올라가서 참았다가 한꺼번에 떨어지는 거야.“


투욱 투욱 투욱.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그의 하얀색 면 티셔츠도 내 겨자색 스웨터도 땀에 범벅이 됐다. 사람들이 들어와서 손을 잡고 있는 우리를 놀란 표정으로 쳐다봤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자꾸만 그의 손을 잡은 내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는 내 손을 채듯 흔들었다.


"힘을 빼라니까!“


그의 설명대로 나는 발꿈치를 들어서 참아 본다고 한껏 참았다가 떨어졌지만 어찌 된 일인지 잘 안됐다.


"끈기 있게 오랜 시간을 두고 연습해야 해. 풍물은 시간이 켜켜로 쌓여야 되는 거야. 그게 공력이거든.“


땀에 전 내가 안 돼 보였는지 노력만 한다면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며 그는 하얗게 웃었고 내 가슴은 텅 빈 것 같았다.
가슴팍에 항상 고여 있어 퍼 올리기만 했던 감성들이 바닥을 드러내고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감 때문에 신념조차 흔들리는 나는 정말이지 그에게 묻고 싶었다. 정말로 참았다 떨어지면 잘 떨어질 수 있는 거냐고. 정말로 올라가는 건 떨어지기 위해서냐고.

딱 한번 어머니가 우는 걸 봤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후 큰 부잣집 최 씨 할머니가 죽었다. 학교에서 돌아왔을 땐 어머니는 집에 없었고 밤이 늦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허기진 나는 무작정 그 집으로 갔다. 대문이 활짝 열린 집안은 불을 밝혀 훤했다. 너른 앞마당엔 멍석위에서 사람들이 술을 마시거나 소반을 든 여자들이 음식상 사이를 바쁘게 오고 갔다. 마루에는 상복을 입은 사람들이 제청 앞에 허리를 꺾고 있었다. 잠시 후 누군가 짧고 낮게 통곡하라! 말했고 아이고 아이고 하는 선소리가 들렸다. 어머니였다. 어머니의 선소리에 이어 상복을 입은 사람들이 일제히 마른 울음을 울었다. 저고리 섶을 허리까지 내려 입은 어머니를 나는 금세 알아봤다.
어머니는 몸을 틀고 손 갈퀴로 마룻바닥을 긁어가며 울었다. 어머니의 곡소리에 상을 당한 사람들과 문상을 온 사람들은 눈물을 찔끔거렸다. 어머니를 저토록 울게 하는 건 무엇일까?
등에처럼 찰싹 달라붙은 낙타 등일까. 나를 아이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게 만든 것, 어머니를 지독히 미워하게 만든 저것일까. 이상하게 그 순간만은 어머니가 밉지 않고 오히려 어머니의 곡소리에 콧등이 알싸하더니 울음이 올라왔다. 영악하게도 나는 가늘게 눈을 뜨고 어룽거리는 눈물 저쪽으로 어머니를 보고 있었다. 순간, 동그랗게 몸을 말고 우는 어머니가 벌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겁에 질렸다. 내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어머니가 아니었다. 배고픔도 잊은 채 조막손으로 부잣집 문설주를 잡고 목청껏 울었다.

갈증이 난다. 여자가 두고 간 생수를 한 모금 마시고 남은 물을 키 작은 냉장고에 넣는다. 옷을 벗고 화장실 문을 연다. 바닥에 깔린 타일이 군데군데 떨어져 있고 샤워부스는 금이 갔다. 밸브를 연다. 제법 물살이 세다. 나는 오랫동안 비누질을 한다. 닫혀있던 피부가 서서히 열리는 것 같다.

"겐지겐 가락이 빠르게 올라가는 건 넘어가기 위해서야.“


백중 굿을 앞두고 달팽이처럼 돌돌 말아 진을 치는 연습을 할 때 겐지겐 가락이 늘어지자 그는 미간에 주름을 세웠다.


"겐지겐은 점점 빨라지면서 달아올라야 해. 그래야만 다음 가락으로 넘어갈 수 있거든.“


정말 빨라지는 건 넘어가기 위해서일까? 그래서 그는 밤과 낮의 구분 없이 무엇에 쫓기는 사람처럼 미친 듯 쇠를 두들기는 걸까. 그는 불안해 보였다. 무엇이 그를 그렇듯 불안하게 만든 걸까.


"나는 샌드위치야.“


연습이 끝나자 숨을 고르면서 벌컥벌컥 물을 들이켜는 그의 얼굴은 마른모래 같았다.

 

"밑에서 후배들이 치고 올라오고 위에서는 실력이 뛰어난 선배들이 버티고 있거든.“


오로지 풍물이 좋아 외길을 산 선배들이 제 기술을 전수한다는 건 목숨 반쪽을 주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반면 요즘 젊은이들은 몸이 유연해서 기술을 익히는 속도가 아주 빨라 위기감마저 든다고. 방심했다간 되레 역공을 받기 일쑤라며 손바닥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나이를 먹는다는 게 왜 서러운 건지 이제야 알겠어.“


땀이 식자 무릎을 펴고 일어서면서 갈라진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그의 모습도 그의 말도 무척 쓸쓸했다. 나는 대체 무엇일까? 무엇을 쓰고자 하는 걸까. 아무리 노력을 해도 돌아오는 건 허탈감 뿐, 어쩌면 나는 신기루를 쫓는 건지도 모른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가면 그곳에 내가 원하는 무엇이 있을 것만 같았다. 대체 무엇일까.
밤새 비는 그쳐있다. 버스터미널 안에 있는 식당에서 간단하게 빈속을 채운다. 캔 커피를 사 들고 운전석에 앉는다. 큰길로 빠져나와 어제 봐 두었던 13번 국도를 확인한다. 이제 저 숫자를 따라가야 한다. 그 끝에 스님과 어머니가 있다.

산골의 봄은 언제나 더디게 왔다. 그래서 한겨울보다 추웠다. 조금씩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고 스님은 추위나 가시거든 가라고 내 손목을 꽉 잡았다. 어머니는 나를 등지고 모로 누워 꼼짝도 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평생을 그렇게 누워 있을 것이다. 나는 스님이 손아귀의 힘을 풀 때까지 기다리다 스스로 손목을 빼고 이십리 길을 걸어서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의 맨 뒤 칸에 앉아 내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았다. 텅 빈 그 곳에 눈발이 사뭇 사방으로 날리고 있었다. 봄눈치곤 꽤 굵었다. 겁도 없이 무작정 집을 나올 수 있었던 용기는 어머니에 대한 미움에서 비롯되었다. 나는 스무 살에 어머니를 버리듯 집을 떠나 타지로 돌았다. 그러다 무슨 마음에선지 어머니를 다시 찾게 되었다. 9년 만의 일이었다.
어머니는 집에 없었다. 절로 올라갔다. 어머니가 거기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경내를 한 바퀴 휘돌아도 어머니는 보이지 않았고 나를 본 스님은 들고 있던 지팡이로 내 어깨를 후려쳤다.


"어미 잡아먹은 년!“


스님은 내 어깨를 몇 번 더 내리쳤다. 이상하게 아프지도 않았고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독한 것!“

 

나를 기다리다 지친 어머니는 스님이 계신 절의 공양주가 되었다. 그곳에서 짧은 여생을 마쳤다.

비포장도로다. 길이 양 갈래로 나뉘어 있다. 오른쪽으로 길을 잡는다. 팔월의 산천은 막 잡아 올린 등 푸른 물고기처럼 싱싱하게 파닥인다. 스님이 계신 절의 윤곽이 보인다. 규모가 크지 않아 공양주를 비롯해 스님 몇 분만 수도 중이다. 지금은 하안거 기간이라 스님들이 모두 참선 수행 중일 것이다. 불안할 정도로 가슴이 뛴다. 절 입구에 자동차가 여러 대 주차되어 있다. 한쪽 공간으로 차를 세우고 일주문을 들어선다. 어머니가 세상을 뜬 후 두 번째로 들어서는 문이다. 그럴 수만 있다면 어머니도 스님도 잊고 살고 싶었다.
경내엔 관광객이 대여섯 명 정도 있을 뿐 조용하다. 극락보전으로 들어선다. 진한 향냄새와 촛불 냄새가 온몸 가득 들어온다. 내 기억 속에 살아 있었던 건 어머니의 냄새보다 향냄새였다. 숨을 훅 들이쉬며 부처님을 우러러 합장을 하는데 갑자기 속에서 무엇인가 울컥 올라온다. 눈물이 마구 쏟아진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발작적으로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해 나는 부처님 전에 납작 엎드린다. 알 수 없는 일이다. 갑자기 일어난 일에 나는 몹시 놀라고 당황스럽다. 잠시 후 평상심을 찾은 나는 세월에 밀려 마모가 된 벽화를 둘러보고 극락보전을 나온다. 스님과 자주 가던 숲으로 간다. 나뭇가지들이 바람에 부대끼는 소리가 들린다. 소나무를 본다. 허리 휜 소나무가 외롭고 슬퍼 보인다. 그동안 많이 자란 것은 아니었으나 예전처럼 볼품 없어 보이진 않는다. 다른 나무에 가려 바람도 빛도 제대로 받지 못한 소나무다. 나는 뱀의 등허리 같은 기둥을 어루만진다. 잎의 길이도 다른 나무에 비해 짧다. 나무 틈새로 뻗은 가지 끝의 잎이 어머니의 귀밑머리처럼 퇴색되어 있다. 나는 그 잎을 조심스레 뗀다. 쉽게 떨어진다. 어머니는 긴 머리를 말아 올려 조막만한 쪽을 졌다. 조막만한 머리에 버드나무로 만든 비녀를 꽂았다. 옛날엔 죽은 여자에게 버드나무로 만든 비녀를 꽂아주었다고 어머니는 입버릇처럼 말했었다. 어머니는 살고싶지 않았던 걸까.


"왔느냐?“


스님이다. 군데군데 검버섯이 핀 안면에 환한 웃음을 짓는다.


", 와야지. 그래야지.“


나는 스님께 합장한다. 스님을 따라 방으로 들어간다. 방안 가득 차 향이 배어 있다. 차를 준비하는 스님의 장삼자락을 보면서 문득 어머니의 흰 저고리를 생각한다. 뜨거운 찻물에 차잎을 띄워 내 앞으로 민다. 어깨를 짓누르는 침묵이 잠시 감돈다. 찻잔의 바닥이 보이고서야 스님은 내 눈을 본다. 깊고 우묵한 눈이다.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눈빛이다. 나는 민망해서 고개를 숙인다.


"사람은 본디, 목표가 없으면 삶의 의욕을 잃는 법이다. 어미는 네가 삶의 목표였다. 네가 그렇게 가버리고 눈에 띄게 말라갔다. 곱은 등이 더 곱아 보였으니까. 목표가 없어졌으니 살아갈 아무런 의미도 이유도 없었겠지. 모든 것이 부질없었을 게다. 네가 얼마만큼의 세월을 겪어내야 어미 속을 알까 모르겠다만…. 어미를 불쌍하게 생각해야 한다.“


자꾸만 울음이 올라와 나는 끝내 스님의 장삼자락에 얼굴을 묻는다. 스님은 손바닥으로 내 등을 문지른다. 온기가 가슴까지 전해진다.

 

"어미를 보듬어라. 그래야 네게 한이 없을 게다. 애써 한을 만들지 마라.“


어머니를 꼽추로 만든 원죄로 끝내 불가에 입적한 외삼촌을 어머니도 한을 만들지 않기 위해 보듬었을까. 평생을 어머니를 위해 부처님 전에 향을 피우고 자신의 잘못을 벌하듯 목탁을 두드린 외삼촌의 말소리가 그렁그렁하다.
한참을 울게 내버려 둔 스님은 내가 진정이 되자 먹을 갈라 이른다. 스님의 말씀에 따라 나는 무릎을 꿇고 먹을 간다. 먹을 가는 동안 마음이 평온하고 경건해진다. 스님은 영가천도에 쓰일 경문을 붓으로 한지에 쓰라 이르곤 자리를 뜬다. 붓을 잡은 손이 가늘게 떨린다. 나는 거의 하루를 준비물을 만드는 일에 몰두한다.
하룻밤 묵고 가라는 스님의 말씀을 뒤로 하고 일주문을 나선다. 스님은 더 이상 잡지 않는다.


"네 어미의 영가는 백중날 내가 잘 천도할 테니 걱정말아라. 내생에는 좋은 모습으로 태어나길 너도 빌어라. 이제 네 어미도 한을 풀 게다. 부디 몸조심하고 어미가 그립거든 오너라.“


스님은 어서 가라고 손사래를 한다. 공양주가 가면서 먹으라고 은박지에 누룽지를 싸서 준다. 나는 고맙다는 말을 연거푸 하고 차에 오른다. 산사에 저녁이내가 끼기 시작한다. 나는 굳이 뒤를 보지 않는다. 아침에 왔던 길인데 새롭다는 생각이 든다. 가속페달을 힘껏 밟으면서 깃발에 넣을 문구를 진원(眞願)이라고 생각한다.

백중일은 머슴들을 위한 날이다. 모내기를 끝내고 추수를 앞둔 머슴들의 노고에 양반들이 떡과 술을 장만해서 하루 동안 가무를 즐기며 쉬게 했는데 그것이 풍속이 되었다. 백중굿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나를 그는 나무랐다. 하지만 절에 다녀온 후 장구를 치는 일이 시들해졌다. 그래서 구경만 하기로 했다.


나는 버스를 타고 놀이마당으로 향한다. 한바탕 풍물을 치기엔 무척 더운 날씨다. 멀리 태평소 소리가 들린다. 곧 굿이 시작될 모양이다. 많은 사람들이 백중굿을 보기 위해 모여 있다. 천막 안에서는 '공간사람들이 관중들에게 대접할 떡과 막걸리를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다. 그들과 인사를 나눈 나는 흰옷에 검정 더그레를 덧입고 그 위에 삼색 띠를 맨 그를 본다. 악기를 메고 고깔을 쓴 사람들이 그에게 시선을 모은다.


째째챙


드디어 그의 쇠가 선소리를 낸다. 그의 선소리를 따라 장구와 북과 징이 제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 태초에 누가 저 소리를 만들어 냈을까! 덤덤한 마음도 톡톡 건드려 흔들어 놓는 저 소리. 시작인가 싶으면 끝이고 끝인가 싶으면 시작인 알 수 없는 오묘한 소리에 관중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환호성을 지른다. 염천의 풍물소리는 깊고 넓게 파장이 일고 산속 곳곳에 피어 있을 꽃들도 놀라서 떨어질 것만 같다. 그의 뒤를 따르는 사람들은 사뿐하게 뛰면서 관중들을 희롱한다.
눈을 감는다. 그의 쇠소리가 들린다. 처음엔 귀로 듣는다. 차츰 팔뚝에 소름이 돋으면서 마음이 열리고 몸이 달뜨면서 점점 신명이 난다. 그렇게 제 소리를 가만히 따라가다 보면 결국 슬퍼진다. 그래서 목을 놓아 울고 싶어진다. 한바탕 울고 나면 가슴에 쌓인 모든 회한이 녹아내릴 것만 같다. 그를 본다. 관중들의 환호에 그의 얼굴도 화색이 돌면서 달아오른다. 쇠 소리가 공명을 일으키는 순간이다. 풍물은 악을 치는 사람도 악을 듣는 사람도 정화시키는 묘한 매력이 있다.
판굿을 끝낸 그에게 '공간사람이 종이컵에 막걸리를 따라준다. 종이컵을 들고 그는 내가 있는 곳으로 온다. 머리꼭지에 수돗물을 틀어놓은 것처럼 그의 얼굴에 땀이 줄줄 흐른다.


"풍물을 겉으로 봤을 땐 무척 쉬워 보였어. 그래서 손끝으로 살짝 건드려봤지. 그런데 건드리면 건드릴수록 도무지 알 수 없겠더군. 모래펄 같았어.“


그는 손바닥으로 땀을 훑어 내린다.


"사람들 얼굴을 봐, 저마다 시름이 있고 가슴에 맺힌 응어리가 있을 거야. 저 사람들이 풍물소리를 들으면서 잠시나마 시름을 잊고 그 응어리를 풀어낼 수 있다면 난 더 바랄 게 없어.“


그는 입술에 묻은 막걸리를 더그레 자락에 닦고 저만치 물러난다. 멀찌감치 떨어져서 관중들을 바라보는 그의 표정은 전에 없는 만족함과 한없는 덧없음이 또렷이 엇갈린다. 그새 어둠이 온다. 더운 날씨를 감안해서 오후 늦게 시작한 탓도 있겠지만 시간의 흐름을 인식하지 못 한 까닭이다.
백중굿의 일정도 막바지다. 백여 개의 청죽을 포개어 세운 달집을 관중들이 쓴 소원지를 끼운 새끼줄로 꽁꽁 묶어 누군가 석유를 뿌려 점화한다. 달집은 순식간에 활활 타올랐고 깃발도 흔들린다. 풍물소리는 절정으로 치닫고, 사람들은 소원지에 쓴 소원보다 더 많은 소원들을 빌 것이다.
탁탁 소리를 내며 타고 남은 재가 하늘로 솟는다. 내 소원도 재가 되어 하늘로 올라갈까? 어머니가 나를 위해 벌레처럼 몸을 말고 울었다면 나는 대체 무엇을 위해 소설을 쓰고 싶은 걸까? 어머니, 그토록 혐오하고 존재를 부정했던 어머니인가? 내 속에 설움으로 남아 있는 어머니를 한 올 한 올 풀어내고 싶은 걸까.

그의 쇠소리가 지옥의 문을 두드리는 것 같다.


째챙째챙째챙째챙 


나는 오줌이 마렵다. 그의 휘모리 가락만 들으면 자꾸만 오줌이 마렵다. <끝>

 

 

<단편소설 심사평 / 백시종·이순원>

"문장과 이야기의 완성도 탁월 어려운 주제 무리없이 그려내"

소설은 글쓴이의 특별한 체험을 오직 사실에 바탕으로 하여 적어나가는 수기와도 다르고, 또 허구에만 지나치게 의존하여 현실적 설득력을 잃어서도 안된다. 허구적 바탕 위에 현실적이고도 보편적인 설득력을 얻을 때 감동과 울림이 있다.

'안개별'(홍신영)은 우리가 살아가는 한 시대의 아픔에 대해 이야기한다. 공감할만한 이야기다. 그러나 선배와 이모부의 죽음이 한 실에 꿰어지지 않고 작품 안에서 서로 따로 노는 느낌이다.

'그 화려하고 참혹한 빛'(허윤실)은 우선 안정된 문장이 눈길을 끈다. 여자는 소아암으로 아이를 잃고, 어린 시절 언니에 대해 가졌던 살의를 떠올린다. 아무리 인과응보적 심정이라 하더라도 삽화도 억지스럽고 연결 자체도 억지스럽다.

'옥상'(김태우)은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아이의 입장에서 자살의 유혹과 심리를 그리고 있다. 작품 끝까지 긴장감이 배어난다. 그러나 최근 소설 소재로 너무 익숙하고, 부분부분의 상황 또한 과장되어 있어 제외시켰다.

그렇게 보자면 당선작으로 뽑은 '곡비'(조여일) 역시 흠이 없는 게 아니다. 자신의 어머니가 남의 죽음에 가서 곡을 해주던 '곡비'였다는 설정부터가 현재 우리 삶의 시간으로 볼 때 다소 억지스럽다. 그럼에도 문장과 완성도에서 가장 앞서고, 죽음을 통한 한과의 화해라는 쉽지 않은 주제를 무리없이 그려낸 이 작가의 역량을 더 크게 보기로 했다. 부디 정진바란다.  

<당선소감 / 조여일>

"날 원고지로 이끈 어머니향한 미움 가슴속 사랑으로 풀어내고 싶어"

 

배꽃 같은 내 어머니는 꼽추 춤을 잘 췄다. 속치마 위에 저고리만 입고 그 속에 베개나 옷가지를 넣어 곱사등이가 되었다.

사람들은 어머니를 보며 배꼽 빠지게 웃었지만 어린 나는 그런 어머니가 밉고 싫었다.

어머니를 미워했던 마음이 나로 하여금 글을 쓰게 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가슴에 똬리처럼 틀고 앉아 있는 어머니를 한 올 한 올 풀어내고 싶다. 이제 희수를 바라보는 어머니, 당신을 사랑합니다.

부족한 글을 뽑아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이제 출발해도 된다는 인정을 받은 거라 생각하고 좋은 작품을 쓰기위해 노력하겠다.

삶의 기울기를 문학에 두게 한 채길순 교수님과 문예창작과 교수님들께 머리 숙여 깊은 감사드리고 힘들 때 버팀목이 되어 준 남편과 딸, 문우들, 글쓰기의 영감을 준 그분께 감사의 말을 전한다.

바다가 보고 싶다.

동해였다. 해안선을 따라 달렸다. 쪽을 삼킨 바다는 날 희롱했다. 어느 순간 보이지 않았다. 숨이 차 한 박자 쉬고 내게 오려는 듯. 바다와 나는 밀고 당기면서 신경전을 벌였다. 신경전을 벌이는 순간순간이 내게는 시작이고 끝이었다. 나는 바다가 아예 멀어질까봐 조바심을 냈다.

바다가 보고 싶다내가 불리하더라도 해안선을 따라 나는 바다와 질펀하게 신경전을 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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