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곧 살아 있는 꽃이니 - 신로사

한국고전번역원

조여일 | 입력 : 2024/06/05 [17:12]

       

내가 곧 살아 있는 꽃이니

 

 

세상 사람들은 그림을 좋아하는데, 아주 꼭 닮은 것을 좋아한다. (…중략…)

내가 곧 살아 있는 꽃이니, 그린 것이 꼭 닮았다고 말해서 무엇하리.

 

世人愛畫,愛其酷肖也. (…中略…) 吾便爲生花,更何言繪之酷肖哉.

세인애화, 애기혹초야. (…중략…) 오변위생화,  갱하언회지혹초재.

 

위백규(魏伯珪, 1727∼1798), 『존재집(存齋集)』권12, 「격물설(格物說)」

 
     
  존재(存齋) 위백규(魏伯珪)는 조선 후기의 학자로, 장흥에서 저술과 교육 활동으로 평생을 보냈다. 그의 박식함은 널리 알려졌는데, 일례로 그의 저작 중 하나인 『환영지(寰瀛誌)』는 마치 백과사전처럼 천문(天文), 지리, 문물(文物), 제도(制度) 등을 총망라하고 있다. 위백규는 박학(博學)에 그치지 않고, 사회 현실에 관심을 기울이고 지역 사회의 폐단을 개혁하기 위해 애썼으며, 노년에는 정조의 명을 받아 「만언봉사(萬言封事)」를 올리기도 하였다. 
 
  위의 문장은 「격물설(格物說)」에서 ‘사물(事物)’ 조목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사람들은 그림을 좋아하는데 실물과 매우 흡사하게 그린 것을 좋아해서, 그 그림을 상자에 넣고 향(香)을 넣어서 보물처럼 보관한다. 그런데 흡사해질 수 있는 것은 내 몸 만한 것이 없다. 그림이 혹여 더러워질까, 냄새가 날까 염려하여 보배처럼 다루지만, 정작 자신한테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살아 있는 꽃이 진짜이고, 꽃을 그린 그림은 가짜인데 사람들은 진짜는 보지 못하고 가짜만 본다. 이에 위백규는 내 자신이 곧 살아 있는 꽃인데, 꽃 그림이 닮았다라고 말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묻고 있다.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1805∼1875)의 유명한 동화 ‘황제와 나이팅게일’도 진짜와 가짜에 관한 이야기다. 옛날 중국 황제는 자신의 정원에 나이팅게일이라는 새가 산다는 것을 듣고는 신하들에게 찾아오게 시키지만 모두들 작고 볼품없는 새가 나이팅게일인지 알지 못했다. 황제는 미천한 소녀를 통해 나이팅게일의 아름다운 노래 소리를 듣고는 눈물을 흘렸다. 그러다가 일본에서 보석으로 화려하게 치장한 ‘태엽 감는 새’를 선물로 받았다. 이 가짜 새는 나이팅게일처럼 아름답게 노래를 불렀는데, 태엽만 감으면 지치지 않고 계속 노래를 불렀다. 사람들은 가짜 새에 환호하였고, 진짜 새는 숲속으로 가버렸다. 시간이 흘러서 가짜 나이팅게일의 태엽이 고장 났고, 황제도 중병에 걸리게 되었다. 황제가 죽음의 문턱에 이르렀을 때 진짜 나이팅게일의 노래를 듣고 깨달음을 얻어 다시 건강해졌다는 결말이다.
 
  진짜와 가짜를 분별해야 한다는 것은 비단 위백규나 안데르센뿐 아니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많은 이들이 누누이 강조한 것으로, 그만큼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것은 어렵고 중요한 일이다. 사람들은  ‘보이는 대로’ 보지 못하고, ‘보고 싶은 대로’ 보기 때문에 가짜에 현혹되기 쉽다. 그래서 꽃은 놓아두고 꽃을 그린 그림만 소중히 다루고, 살아 숨쉬는 새는 보지 못하고 태엽 감는 가짜새에 환호하게 된다. 

  그런데 위백규는 가짜와 진짜에 대한 분별에서 그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사람은 생김새가 성현과 꼭 닮았다. 내 심성(心性)이 성현과 같기 때문에 나를 극복하고 성실함을 보존하고 처음을 회복하면, ‘내가 곧 성인이고 성인이 곧 나’라고까지 말을 하였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 또한 살아있는 새는 보지 못하고, 보석으로 치장한 가짜 새만 보는 우(愚)를 범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기 자신이 귀한 줄은 모르고, 외물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위백규의 말처럼 참으로 사랑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잊지 말아야겠다. 
 
 
     
 글쓴이 신로사
 한문고전번역가, 성균관대학교 한문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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