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여는신문

서재와 동재 사이에서 - 김나영

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조여일 | 기사입력 2026/04/22 [12:32]

서재와 동재 사이에서 - 김나영

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조여일 | 입력 : 2026/04/22 [12:32]
2026년 4월 22일 (수)
2025 '한국고전종합DB' 활용 공모전 고전명구 부문 당선작
  
  

서재와 동재 사이에서

서재에는 노론이 가득하고, 동재에는 세 당색이 갈라져 있다.

 

西齋老論摠紛紛, 獨也東齋三色分

서재노론총분분, 독야동재삼색분

 

   - 윤기(尹愭,1741~1826), 『무명자집(無名子集)』 「반중잡영(泮中雜詠)」

 
     
  
  요즘 사회적 이슈가 터질 때마다 사람들의 반응을 먼저 살펴본다. 댓글창에서도, 뉴스 토론 자리에서도, 누가 먼저 ‘내 편’인지부터 확인하려 드는 시선이 노골적으로 느껴진다. 논리는 뒷전이고 이름표가 먼저 붙으며, ‘누가 말했는가’가 ‘무엇을 말했는가’ 보다 앞서는 세계다. 진영 논리에 모든 사고를 맡긴 듯한 모습에 지레 질리는 기분이다.

  200여 년 전, 18세기 성균관의 모습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던 듯하다. 조선 후기 문인 윤기(尹愭)는 〈반중잡영(泮中雜詠)〉에서 당시 성균관의 현실을 기록했다. 그는 생원시 합격 후 성균관에서 겪은 일을 담으며, 관료들의 부정과 파당의 폐해로 쇠락한 성균관을 한탄했다. 조선 최고의 교육기관이었던 성균관은 나라의 근본을 길러내는 곳이어야 했으나, 서재에는 노론이 가득하고, 동재에는 세 당색이 물과 기름처럼 나뉘어 하나의 울타리 안에 있던 유생들이 이미 서로에게 등을 돌린 모습이었다.

  그는 탄식했다. 높은 자리의 관리들은 그저 자리를 채우는 데 그치고, 아첨꾼들은 염치가 없다고. 학문은 사라지고 누가 이길 지에만 몰두한 성균관처럼, 오늘날 우리의 ‘공론의 장’도 사유를 멈추고 권세의 논리에 포획되었다. 그는 ‘사람마다 사랑과 미움이 달라 서로의 허물을 씻고 찾기에만 몰두한다’고 했다. 여지없이 바로 지금 우리의 모습이다. ‘호오(好惡)가 각기 달라 남의 허물을 애써 찾는다’는 그의 말처럼, 서로의 허물을 찾느라 바쁜 세상이 되어버렸다.

  오늘날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는 18세기 서재와 동재가 확장된 공간처럼 느껴진다. 모든 이슈는 어느새 ‘내 편’과 ‘네 편’의 경계로 수렴된다. 타인의 글은 읽히지 않고, 내 진영의 언어, 확증 편향의 메아리만 증폭된다. 이 세계에서 공감과 논리는 작동하지 않는다. 신중한 다른 견해를 내놓으면 곧 변절자로 낙인찍히고, 합리적 토론은 배제된다. 지성의 공간인 학문도, 여론을 만드는 언론도 어느새 ‘서재와 동재’로 갈라졌다. ‘우리가 이겨야 한다’는 감정이 ‘무엇이 옳은가’라는 이성을 압도한다. 정치권 역시 다르지 않다. 논쟁은 적개심과 혐오만 키우고, 진영의 편가르기가 진실보다 앞서 작동한다. 염치없는 자들이 기회를 독점한다는 윤기의 한탄은, 21세기 한국 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작품의 마지막 시구는 우리를 향한 질문을 던진다.
“옛 모습을 되돌릴 자, 과연 누구인가. (挽回古昔果伊誰)”

  그는 성균관을 다시 학문이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 만들기를 바랐다. 지금, 진영의 전장이 된 우리의 모든 공론의 장에서도 같은 질문이 유효하다. 진영의 언어가 아닌 스스로의 언어, 증오가 아닌 이해의 회로를 다시 만드는 것. 서재와 동재 사이에서 자신의 사유를 잃지 않기를 바라본다.
 
 
     
 글쓴이 김나영
  '한국고전종합DB' 활용 공모전 고전명구 부문 당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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