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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 발령을 받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집을 어떻게 구하지?”였다. 제주에서 4년 가까이 살다가 2주 만에 서울에 가게 되었으니, 다리 뻗고 누울 방 한 칸이 급하게 된 상황이었다. 부랴부랴 여러 사람 힘들게 하면서 겨우 셋집을 구하고 이사하니, 어수선한 모습이 꼭 내 머릿속 같구나 싶어 헛웃음이 나오곤 했다. 내 집이 아니다 보니 못 하나 박기도 힘들고 조심해야 할 게 한둘이 아니었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던가, 몇 달 지난 지금은 그런대로 정을 붙이며 살고 있는 중이다.
옛적 조선시대 서울도 주택난이 제법 심했다. 하층에 속하는 분들이야 그렇다 쳐도, 양반들도 서울서 살 집 구하기가 만만치 않았던지 셋집 사는 이야기가 문집에 심심찮게 보인다. 개중 조선 말 한문학 4대가의 하나로 꼽히는 영재(寧齋) 이건창의 시가 마음을 잡아끌었다. 남호(南湖)는 지금의 용산 쪽 한강을 가리키는 별칭으로, 이건창이 관직생활을 할 때 이 부근에 집을 얻어 살았다. 그 전에는 셋집도 아니고 셋방을 전전했던 모양인데, 남의 집일지언정 ‘음탁(飮啄)’을 눈치 보지 않고 ‘서검(書劍)’을 갈고닦을 수 있게 되었으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던가 보다. 하물며 낚싯배 한가로이 떠다니는 한강 물가임에랴. 셋집일망정 하나하나 꾸미며 살짝 웃고 주변 풍광에 감탄하다가도, 문득문득 떠오르는 것은 강화도 사기리(沙器里) 고향집이다. 바다를 건너야 하는 고향, 그곳의 산과 들은 그대로일까. 이건창은 한강물을 바라보며 그 물이 흘러가 닿는 곳, 강화를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내가 새로 살게 된 집도 풍광이 꽤 그럴듯하다. 앞으로는 겹겹이 쌓인 아파트들이 나름대로 능선을 이루며 펼쳐져 있고, 뒤로는 북한산과 도봉산 연봉(連峯)이 한눈에 바라다보인다. 이렇게 멋진 풍광을 두른 집에 살게 돼서 참 감사하고, 마음도 편해졌지만, 예전에 살던 제주 집이 문득문득 떠오르곤 한다. 두고 온 바다와 온갖 기화요초(琪花瑤草)들이 그리울 때 … 아, 그리고 제주 살던 시절이 떠오를 시기가 하나 더 있다. 집세를 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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