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 문장으로 이름난 집안을 손꼽는다면 월사(月沙) 이정귀(李廷龜) 가문을 빼놓을 수 없다. 이정귀와 두 아들 이명한, 이소한 모두 문명을 떨쳐 세상에서는 삼부자를 중국의 삼소(三蘇)에 비견했다. 이 시는 이소한이 마흔 후반에 쓴 시로 고사를 다양하게 인용하면서도 생동감 있게 벗을 만난 기쁨을 묘사하였다.
도입부에선 강가에 풍악이 울리고 사또가 행차하는 왁자지껄한 모습을 통해 특별한 일이 벌어질 것 같은 기대감을 불러일으킨다. 먼지를 닦으며 초조하게 기다리다가 신발도 제대로 신지 않은 채 벗에게 뛰쳐나가는 장면에선 그간의 그리움이 여실히 드러난다. 밤에 등불 밝히고 시를 수창하며 서로의 우정을 확인하였고, 그 마음을 다시 편지에 담아 벗에게 재차 고마움을 전하였다.
벗의 방문에 설레는 감정, 대면했을 때의 감격, 만나서 나누는 회포, 이별 후에 전하는 마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시상이 전개되고, 공활한 강변에서 집 앞, 방 안으로 배경은 화자 가까이 클로즈업된다. 시공간을 종횡하는 언어의 직조가 시인의 들뜬 마음에 생동감을 배가하고 있다.
이소한은 약관의 나이에 문과에 급제하여 청요직(淸要職)을 두루 역임하였으나 순탄하지 않은 삶을 살았는데, 가장 큰 질곡은 병자호란이었다. 전란을 겪으며 모친과 아내, 형수와 조카, 질부까지 자결하거나 병사하는 등 참화를 입었고, 전쟁이 끝난 뒤에도 소현세자를 보위하는 직임으로 심양에 1년 남짓 억류되는 등 신산한 삶을 살아야 했다. 귀국하여 형조 참판에 올랐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역마(驛馬)를 타는 규정을 위반한 일로 평구(平丘)에 유배되었다. 그러나 이는 아전의 잘못이었고 또 조사 결과 사실이 아니라는 판결까지 있었으므로 이소한 입장에서는 억울한 처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
타고난 재능으로 소년등과하여 요로에 올랐으나 영광만큼 역경도 많은 삶이었다. 전쟁의 화마를 정면으로 마주한 마흔 후반의 그에게 남은 것은 쓸쓸한 유배지의 삶이었다. 그런 시기에 찾아 준 벗이었으니 얼마나 반가웠을까. 밤새 시주(詩酒)를 주고받으며 깊은 우정을 나누었다.
‘서창’은 당나라 이상은(李商隱)의 시에 나오는 말로 벗과 밤새 정담을 나누고자 한 공간이며, ‘남악’은 송나라 주희(朱熹)가 벗들과 유람한 장소이다. 마지막 구의 백제성 편지는 당나라 두보(杜甫)의 시에 나오는 말로 백제성에 편지를 보내 곡식을 빌린다는 뜻이다. 종합하면 벗과 이 좋은 곳에서 풍류를 즐길 뿐이지 다른 말은 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 된다.
유배 당시 이소한이 거처한 곳은 한강변에서 최고의 풍광을 자랑하던 몽오정(夢烏亭)이다. 몽오정은 남이공(南以恭)이 지은 정자인데 사위 이원진(李元鎭)이 물려받았다. 마침 이원진이 부수찬에 제수되어 서울에 가 있는 터라 이소한이 빌려서 지낼 수 있었다. 물론 쓸쓸한 감정이 없지 않았겠지만 당시 유배지에서 벗과 나눈 시간들은 그간의 지친 삶의 여정에 하나의 위안이 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많은 벗들이 방문하여 함께 풍류를 즐겼다. 이소한이 이원진의 부채에 써 준 시에 “바쁜 이는 떠나고 한가한 이는 머무니, 그대와 나 중에 누가 주인이겠소.”라고 하여 그 풍광을 소유한 것에 만족한 뜻을 보이기도 하였다.
벗을 마중하고 배웅하며 소일하던 시절도 이듬해 유배에서 풀려나며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두 달 뒤 형 이명한과 막내딸이 연이어 죽자 애통해하다 병사하고 말았다. 세상 가장 힘든 배웅은 영원한 이별을 앞둔 배웅일 것이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연이어 배웅한 그에게 더 이상의 배웅은 감당하기 어려웠나 보다.
마중과 배웅, 개인적으로 가장 헷갈리는 말이다. 늘 마중을 말해야 할 때 배웅을 말하고 배웅을 말해야 할 때 마중을 말한다. 만남과 이별은 가장 간극이 큰 단어인데 어떻게 이렇게 자주 헷갈리는지 나 자신도 참 의아하다. 그러나 한편으론 마중과 배웅이 늘 실과 바늘처럼 엮여 있어서 헷갈리는 게 아닌가 싶다. 회자정리야말로 인간이라면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숙명이니까.
매일 마중하고 배웅하며 사는 사람을 가족이라 한다. 일상적으로 마중하고 배웅하는 시기가 지나면 또 다른 가족을 만들어 떠나는 것은 부모 자식이다. 늘 마중하고 배웅할 순 없지만 언제나 마음속에 방을 만들어 초대하고픈 사람이 그래서 부모 자식인가 보다.
한가위의 달이다. 모두들 옛집으로 돌아가 달마중을 하는 시간이다. 마중과 배웅의 시간에 사랑하는 가족의 손을 꼭 잡고 함께여서 소중한 시간을 만끽하고 오시길 바란다.